[국기태권도 숨은공로자 이유생을 추억하다 ⑤] 이기택 총재와 인연…세계주니어연맹 초대 회장까지
Published on May 18th,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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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생(80) 전 대한중고등학교태권도연맹 회장은 태권도 현대사 증인이자 세계화를 이끈 주역 중 한 명이다. 지난 1988년부터 1992년까지 중고연맹 8~9대 회장을 역임한 그는 국내,외에 국기 태권도를 보급하고 알리는 데 이바지한 인물이다. 1세대 태권도인은 어느덧 70~80대가 됐다. 그들은 단지 신체단련을 위한 태권도의 길을 걸었던 게 아니다. 몸과 마음, 정신의 조화에 가치를 두고 태권도 세계화에 앞장서왔다. 스포츠서울은 태권도 국기 지정 1주년을 맞아 6회에 걸쳐 숨은 영웅 이유생 전 중고연맹 회장의 업적을 짚어봤다. <편집자주>
[스포츠서울 김용일기자] 대회 창설 등 태권도 유망주 저변 확대에 이바지한 이유생 전 대한중고등학교태권도연맹 회장이 기억하는 은인 중 한 명은 고(故) 이기택 전 민주당 총재다. 7선 국회의원을 지낸 이 전 총재는 이 회장과 4·19 동지이기도 했다. 이 회장은 부임 전 중고연맹은 재정 여건상 연중 회장기 ‘단 한 개 대회’만 열었다. 여러 기업인과 방송국의 협조로 후원사를 꾸린 그는 당시 정동성 체육부장관에게 건의, 태권도 종주국으로 정부 차원 대회를 유치하자고 설득했는데 이 전 총재가 적극적으로 도움을 주기도 했다. 또 중고대회 최초로 지상파 생중계를 유치하는 등 이 회장이 추진한 사업에도 관심을 기울였다. 이 회장은 “이 전 총재께서 국회의원 중에서는 가장 태권도에 대한 애정을 갖고 있었고 후원도 적극적이었다”고 기억했다.
이 회장은 지난 1989년 88체육관에서 제16회 회장기 중고연맹전이 열렸을 때 이 전 총재와 홍정수 대한태권도협회 부회장과 나란히 앉아 찍은 사진을 꺼내들면서 “모든 정치인이 그를 기억하듯 나 역시 태권도 텃밭을 가꾸는 데 잊기 어려운 존재 중 한 명”이라며 옛 추억을 더듬기도 했다.
그렇게 국내에서 태권도 미래 자원들이 나래를 펼치는 데 이바지한 그는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태권도가 시범 종목으로 열리기 전에 국가대표로 구성된 시범단 단장으로 선임돼 유럽 7개국 순회 공연을 지휘했다. 현지에 태권도 문화를 알리고 국제올림픽위원회(IOC) 관계자를 국내로 초청해 별도 행사를 마련하는 등 국제 교류에서도 두각을 보인 그는 1991년 10월 그리스에서 37개국이 뜻을 모아 설립한 세계태권도주니어연맹의 초대 회장으로 선출됐다. 이 회장은 “당시 김운용 대한태권도협회 회장서부터 나를 적극적으로 추천했다. 그리스에서 함께 간 기억이 있는데 매우 영광스러운 일이었다”고 떠올렸다. 1992년 5월18일자 ‘조선일보’는 ‘중고연맹을 이끌며 각종 회의 대표로도 10여차례 참여한바있는 그는 태권도계에서 정평있는 숨은 일꾼’이라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태권도시범이 뜻대로 끝난다면 지난해부터 추진해왔던 세계주니어태권도연맹의 활성화에 전력을 기울일 계획을 갖고 있다’고 언급했다.
다만 이 회장은 1992년 말 허리 디스크 수술을 하면서 중고연맹은 물론, 세계주니어연맹 수장직에서 물러나야 했다. 그는 “당시 세계주니어연맹 대회도 나름대로 준비하고 있었는데 내가 당시 몸도 안 좋아지고 수술하고 병원 신세를 지면서 초대 대회가 미뤄진 적이 있다”며 “지금이야 세계주니어선수권 등이 아주 화려하게 열리고 있지만 당시엔 나처럼 윗선에서 제대로 챙기지 않으면 활성화가 되지 않았다”고 떠올렸다. 그러면서 “비록 몸이 좋지 않아서 완벽하게 임무를 마치진 못했지만 전 세계 어린이들이 태권도를 접할 계기까지 마련하고 일선에서 물러난 게 어찌보면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곱씹었다.
<⑤ 편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