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기태권도 숨은공로자 이유생을 추억하다 ⑥]"태권도인보다 더 뜨거운 마음으로 일한 사람"

대한중고등학교태권도연맹 회장 시절 이유생 회장의 모습.

Published on May 25th, 2019
http://www.sportsseoul.com/news/read/767198

이유생(80) 전 대한중고등학교태권도연맹 회장은 태권도 현대사 증인이자 세계화를 이끈 주역 중 한 명이다. 지난 1988년부터 1992년까지 중고연맹 8~9대 회장을 역임한 그는 국내,외에 국기 태권도를 보급하고 알리는 데 이바지한 인물이다. 1세대 태권도인은 어느덧 70~80대가 됐다. 그들은 단지 신체단련을 위한 태권도의 길을 걸었던 게 아니다. 몸과 마음, 정신의 조화에 가치를 두고 태권도 세계화에 앞장서왔다. 스포츠서울은 태권도 국기 지정 1주년을 맞아 6회에 걸쳐 숨은 영웅 이유생 전 중고연맹 회장의 업적을 짚어봤다. <편집자주>

[스포츠서울 김용일기자] “태권도인보다 더 뜨거운 마음으로 일한 분.”

1978년부터 41년째 서울경찰청 태권도를 이끄는 이택명 사범도 이유생 전 대한중고등학교태권도연맹 회장을 또렷하게 기억한다. 과거 한영중고등학교 실기교사로 태권도 선수를 육성한 그는 1990~2000년대 주니어 국가대표와 성인 국가대표 감독 등을 역임한 인물이다. 그는 이 회장이 중고연맹 부임 초기 텃밭을 가꿀 때 자문 및 감사관으로 참가했다. 이 회장은 “중고연맹에 부임했을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긴 건 태권도 미래 꿈나무를 위한 기반 조성이었다. 그러려면 중고연맹이 진정으로 선수와 지도자를 위해 존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당시 태권도계엔 워낙 비리도 많았고 일부 임원진과 심판 등이 어우러져 잇속을 챙기는 풍토가 만연했다”고 떠올렸다. 이 회장은 임원진을 각 지역 지도자로 꾸리고 심판진도 새로 정비하는 등 개혁에 힘썼다. 당연히 기존 중고연맹을 장악하다시피 한 세력의 반발이 거셌다. 그 당시 여러 태권도인과 관계를 맺고 있던 이택명 사범은 진정으로 중고 태권도 개혁에 의지를 품은 이 회장에게서 진심을 느꼈고 그를 지원 사격했다.

이택명 사범은 “지금이야 여러 종목의 단체 수장을 경기인 출신이 하고 있지만 당시엔 거의 기업인이나 정치인이 맡았다”며 “이 회장께서는 비경기인이라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았다. 그야말로 태권도인보다 더 태권도인처럼 종목을 대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중고연맹은 사무실조차 없어서 일반 고등학교에 들어가서 사무국을 임시로 꾸리면서 지냈다”고 덧붙였다. 당시 단열재 생산 업체인 화신기업을 동시에 이끌고 있던 이 회장도 “보따리 장수가 따로 없었다”면서 열악한 사무 환경을 언급한 적이 있다. 그는 화신기업 본사가 있었던 서울 강남구 역삼동 대명빌딩 내에 중고연맹 사무실을 꾸렸고, 집기를 갖추는 일부터 직접 발로 뛰었다. 그리고 중고연맹 주관 대회 최초로 지상파 생중계 시대를 열었고, 현재 문화체육관광부장관기의 시초였던 체육부장관기를 처음 개최하는 등 저변 확대에 크게 이바지했다. 1990년 8월 20일 잠실학생체육관에서 열린 초대 대회에만 남녀 중고등학교 156개교 1502명이 참가하면서 크게 이목을 끌었다. 이택명 사범은 “태권도 자체가 비인기 종목으로 관심받지 못할 때였는데 중,고등학생의 경기가 지상파에 등장하고 1000명이 넘는 규모로 열린다는 건 대단한 일이었다”며 “중고연맹 대회가 활성화하면서 태권도에 대한 꿈나무들의 관심과 참여도가 굉장히 높아진 시대”라고 언급했다. 또 “그때 등장했던 여러 선수들이 지금 지도자 뿐 아니라 태권도학과 교수직을 맡고 있는데 모두 이 회장께서 태권도 발전에 이바지한 것을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국내 태권도 꿈나무의 텃밭을 가꾼 뒤 올림픽 정식종목 유치를 위한 국제적 활동까지 발을 넓혔던 이 회장은 1992년 허리 디스크 등 몸 상태가 온전치 않아 일선에서 물러나야 했다. 이택명 사범은 “이 회장께서 사실 대한태권도협회 회장직으로도 여러 사람이 추천했던 것으로 기억한다”며 “아쉽게 몸이 허락하지 않았지만 조금 더 태권도 행정에 참여할 수 있었다면 지금 한국 태권도가 한층 더 성숙했을 것 같다”고 강조했다.

<편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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